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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본부장이 한미 FTA 협상을 끝낸 야구 이야기

by 순이하우스 2025. 4. 20.

재미있는 외교협상 이야기

국가 간 대형 협상은 일반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회의실, 수십 명이 오가는 복도, 치열한 문서 협상 테이블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장소에서, 우연적인 대화가 협상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 당시 수석대표였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직접 털어놓은 일화는 바로 이런 '운명의 장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김현종 전 본부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협상 마지막 순간의 극적인 비하인드를 공개했습니다. 모든 협상이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상황. 마지막 회의를 앞두고 그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 건물의 화장실에 들렀고, 그곳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E. Lighthizer)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오직 두 사람만 존재했던 이 짧은 순간. 둘은 야구 이야기라는 뜻밖의 주제로 대화를 시작했고, 이 짧은 대화가 긴박했던 협상의 막판을 부드럽게 풀어냈다고 합니다.

 

김현종 전 본부장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하여 인터뷰하고 있는 김현종 전 본부장

 

한미 FTA 협상의 막바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이전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은 기존 한미 FTA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며 재협상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2018년 양국은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협상은 자동차, 철강, 농업 분야 등 민감한 쟁점에서 팽팽히 맞서며 난항을 겪었고, 김현종 본부장도 불확실한 결과를 앞두고 긴장감을 느끼던 상황이었습니다. 김현종 본부장 역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한 마음으로 회의에 들어가기 전 잠시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인물이 바로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였습니다. 원래 공식 석상에서는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만 대화를 나누던 상대였기 때문에, 이 뜻밖의 만남은 처음부터 약간 어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어색함이 이들을 좀 더 인간적으로 만들었고, 결국 협상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야구로 시작된 뜻밖의 대화

라이트하이저는 화장실에서 만나 어색했는지 먼저 김현종 본부장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미국 야구 좋아하십니까?" 이에 김 본부장이 "좋아한다"고 답하자, 라이트하이저는 어느 팀을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김 본부장은 볼티모어 오리올스(Baltimore Orioles)를 좋아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라이트하이저 역시 같은 팀을 좋아한다고 밝히며,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라이트하이저가 1970년대 초반 오리올스에 "20승 투수가 3명 있었다"고 말했지만, 김현종 본부장이 "3명이 아니라 4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디테일한 팩트 체크는 라이트하이저를 감탄하게 했고,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김현종 본부장이 언급한 네 명의 투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짐 파머 (Jim Palmer) : 1970년 20승 10패, 1971년 20승 9패, 1972년 21승 10패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마이크 쿠엘라 (Mike Cuellar) : 1970년 24승 8패, 1971년 20승 9패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데이브 맥널리 (Dave McNally) : 1970년 24승 9패, 1971년 21승 5패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팻 돕슨 (Pat Dobson) : 1971년 20승 8패로 20승 투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이 네 명은 1971년 시즌에 모두 20승 이상을 기록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당대 최강팀으로 만들었습니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정확한 기억력을 보여준 김현종 본부장은 라이트하이저와의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둘 사이의 경직된 분위기가 풀리면서, 공식 협상 테이블에서도 훨씬 부드럽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화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화장실 대화 이후 한미 FTA의 개정 협상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일화는 협상이란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소통에 달려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더라도, 때로는 인간적인 공감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김현종 본부장의 재치와 세심함, 그리고 상황을 유연하게 풀어가는 능력은 오늘날에도 협상의 본보기로 남습니다.

 

 

김현종 통성교섭 본부장

김현종은 한미 FTA 협상 당시 한국 측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수석대표를 맡아 협상을 주도했으며, 미국 측에서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USTR 대표로 수석 협상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한미 FTA는 2007년 기본 협상이 완료된 후 추가 협상을 거쳐 2012년에 발효되었습니다. 협상 중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대한 공통 관심사는 두 협상가 간 긴장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1971년 오리올스의 20승 투수였던 짐 파머, 마이크 쿠엘라, 데이브 맥널리, 팻 돕슨을 둘러싼 이야기가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현종 본부장은 세밀한 사실 확인과 빠른 임기응변, 인간적인 공감 능력을 발휘했으며, 이 일화는 협상에서 철저한 준비와 함께 예기치 않은 상황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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